사진의 주인공인 조형원 선수는 치사율 80%의 중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보는 바와 같이 몸 곳곳에 흉터가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누구보다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련을 이겨내며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진행되는 새옹지마 가득한 그의 이야기를 주목해보자.

조형원 (CHO HYUNG WON)
1972년 10월 17일 / 163cm / 현재 76kg (-70kg급 준비 중)
[ 경력 ] 1989 미스터충북 학생부 1위 1990 미스터코리아 학생부 1위 1991 아시아선수권 주니어부 -70kg급 6위 2013 미스터충북 -70kg급 1위 2013 미스터코리아 -70kg급 6위

근육량 제로의 조형원 선수가 상상이 되는가? 물론 인간의 신체에서 근육량이 제로가 되는 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몸무게 48kg에 겉으로 보이는 근육은 제로에 가까운 상태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며 모든 것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웨이트를 시작해 고등학생 때부터는 촉망 받는 유망주 보디빌더로 성장해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보디빌딩 특기생으로 입학했으며 최종 꿈을 미스터코리아로 그리던 그의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96년, 당시 대학생이던 조형원은 전기누전으로 집에 불이 나며 빠져나오던 중 불길에 휩싸여 신체의 40%에 3도 화상이라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중환자실에서 시작한 긴 병원생활, 매일 반복되는 극한 고통의 화상부위 드레싱 치료는 그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점 지쳐갔고, 정신을 차린 후 거울 속 화상 흉터로 많은 것이 바뀐 자신의 모습에 절망했다. 이때부터 그는 보디빌더를 비롯한 모든 꿈을 접고 세상과 단절한 채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청춘기를 기나긴 칩거생활로 이어갔다.
길고도 긴 아픔의 시간 24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는 그의 생활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결코 집조차 편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친척들이 집에 방문하면 그마저도 불편해 방으로 들어갔으며, 어머니를 제외한 누구와도 만나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조심스레 당시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반복된 피부이식 수술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봐도 흉측하고 보기 싫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쓰린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말처럼 긴 시간 동안 수술은 여러 번 반복됐다. 사고 때 함께 눌어붙은 손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여러 번 받았으며, 턱과 목도 함께 붙어 등에 있는 피부를 절개해 목에 이식하는 등 그 고통은 결코 헤아릴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아픔의 시간 동안 그는 스스로에게 반복해 물었다. 정말 이대로 집에 있겠냐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정녕 없는 것이냐고? 몇 번을 고민하고 곱씹어도 덤벨을 다시 들고 싶었고, 웨이트 운동을 통해 과거의 꿈인 보디빌더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모습에 포기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일어서기 시작한 작은 거인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끊고 지내던 그의 꿈속에 건강했던 선수시절 조형원이 거듭 등장한다. 대학 때 운동하고 시합을 뛰며 무대 위에서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말이다. 간절히 원하던 자신의 꿈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연거푸 생각한 끝에 홀로 동네의 작은 헬스장을 찾게 된다.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스스로의 의지로 외출을 감행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취미이자 목표였던 웨이트마저 안 한다면 정말 이대로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어떠한 이유라도 상관없다.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로서는 정말 큰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 후 그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단 30분만 운동했을 뿐인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쾌함을 느꼈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묵은 앙금을 씻어낸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자신의 화상 흉터는 그대로인지라 마주치는 타인의 시선에 위축되는 등 힘든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운동을 시작하자 이전의 몸과는 현저히 달랐다. 화상으로 지문을 잃은 손가락의 마디 구분마저 확실치 않아 당기는 운동을 할 때는 자극이 등이 아니라 손에 전달되는 듯 아팠으며, 덤벨을 잡는 방법부터 느낌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스트랩과 허리 벨트는 반드시 챙기고, 팔 운동을 할 때조차 벨트를 매야 했다. 또 중량을 배제하고서는 근성장이 안 되는 걸 잘 알지만 부상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리웨이트는 욕심내지 않고, 고중량은 머신 등을 활용했다. 이렇게 간신히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투지에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선수시절 몸은 아니었지만 일반인을 넘어 선수의 보디라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 실낱 같은 선수로서의 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고중량으로 인한 잘못된 자세는 금물이다. 근성장의 저하는 물론이고 부상 위험도 높다. 잊지 마라! 웨이트트레이닝은 결코 차력이 아니다.

뚜렷해져가는 자아실현 2011년, 자신의 몸이 결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함께 운동하던 최재덕(2002년 미스터코리아) 선수가 대회 출전을 적극 독려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미스터충북대회에 나갔지만 예선 탈락해 출전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큰 소득이었다. 모든 사람이 당당히 겨루는 자리에서 함께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군다나 그는 무대 체질인 건가? 전혀 떨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날의 화재로 몇 장 남지 않는 예전 대회 사진을 살펴보면 다들 긴장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조형원 선수만은 싱글벙글이다. 그가 당시 느낀 창피함은 단 한 가지였다. 몸을 다 만들지 못하고 체중만 맞춰서 나가 체지방 커팅을 하지 못한 것이 선수로서 창피했다. 출전 그 이상의 목표를 다시 세우기에 충분한 자극이 된 대회 출전이었다. 그 후 그는 정말 정해진 운동 루틴대로 정확하게 진행했다. 자신의 신장에 맞게 2체급을 올려 준비했고 드디어 2013년 미스터충북대회에 다시 출전했다. 체구가 커지고 몸도 더 좋아져서 그런지 대회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무대에 서기 전에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남들과 조금 다른 자신의 모습에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했고, 자신을 보면 인상을 쓰거나 눈을 피하는 것에 익숙한 그에게 그날 대회장의 상황은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미스터충북 -70kg급 우승을 거머쥐었다. 내친김에 그랑프리까지 차지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음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좌절의 가시밭길을 걸을 때라도 결코 멈추지 마라. 그곳에서 넘어지면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 만약 걷기가 힘들다면 망설이지 말고 주위에 손을 뻗어라.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도 큰 용기임에 틀림없다.

가족과 삶의 소중함 웨이트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등 활발해진 활동에 그보다 신 난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가족들일 것이다. 축 늘어진 어깨만 바라보던 그의 어머니는 대회장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 당당히 포즈 잡은 그의 모습에 묘한 감동마저 느꼈을 수 있다. 사실 긴 시간 동안 그만큼 고생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이다. 양손 모두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식사할 때는 물론 화장실도 동행해야 했고, 그 후 기나긴 시간 동안 간호와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고 해주셨다. 그런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환자 조형원이 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나의 자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며,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파이팅을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체형을 평가하고 싶다. 보디빌딩 세계에서 역사적인 인물로는 프랭크 제인(Frank Zane), 크리스 디커슨(Chris Dickerson)이 있고 마이크 맨저(Mike Mentzer)가 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된 체형을 갖고 있다. 먼저 말한 두 선수는 근육 키우기가 아주 힘든 가냘픈 체형의 노력형 빌더이다. 반면, 후자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 덤벨만 스쳐도 근육이 발달되는 축복받은 체질이다. 조형원 선수는 후자에 가깝다. 골격에 접해 있는 근육이 빈틈없이 꽉 차 있다. 펌핑도 잘되고 사이즈도 무난히 발달시킬 수 있는 우수한 체질이다. 또 몸의 밸런스도 나무랄 데가 없다. 거기다 인물까지 받쳐주니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보상으로 많은 이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귀감이 되리라 여겨진다.
지금 하는 트레이닝 중 정확한 자세 강조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근육의 발달은 자극 하나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손상된 근섬유의 치유와 회복이 빨리 안 따라주면 성장이 정지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운동량은 손상된 근조직 세포의 부종을 만들고 회복기간을 72시간을 넘겨 글리코겐의 저장이 늦어진다. 더 많은 세트 수가 몸을 키우는 것은 막연하다고 정의된다. 오히려 피로와 회복 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발달을 더디게 한다. 실례를 들면 미스터 올림피아인 프랑코 콜럼부(franco columbu)는 작은 키에 힘의 황제로 불리기도 했지만 팔이 커지지 않아 세트를 늘렸는데, 오히려 사이즈가 줄었다고 한다. 그는 연구 끝에 생리학자의 조언을 받아 무려 11세트를 줄여 만족한 팔을 만들 수 있었다.
글 이화형 사진 LAY PHOTOGRAPHY, 이화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