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는 과학이다.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중량원판을 끼운 바벨, 일반인보다 두 배나 굵은 튼튼한 허벅지,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손에 묻힌 초크가루, 무게를 이기기 위해 찡그린 인상과 이마에 생긴 굵은 혈관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듯한 온몸의 떨림. 이런 모습들만 보고 역도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역도는 단순히 근력으로만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종목이 두 가지뿐이라서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이 두 가지 동작을 최대한의 무게로 성공하기 위해 다양한 파워 트레이닝과 기술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이렇게 파생된 트레이닝 종목들은 모든 스포츠의 기초체력 향상에 이용되고 있다. 최대 중량을 다루기 위한 트레이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양한 트레이닝을 수없이 반복하며 완성된 인상과 용상의 특별한 훈련을 알아보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아 여자 국가대표 김소화 선수의 트레이닝을 밀착 취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전병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장미란, 사재혁). 우리나라에 역도 강국의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올림픽에서 따낸 세 개의 금메달이 대변하고 있다. 특히 여자 역도는 장미란 선수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쓰러져 가던 한국 여자 역도를 다시 일으켰다. 힘을 대변하는 용상에서 세계선수와 견주어 절대 뒤지지 않는 기록으로 한국인의 근력이 약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좀 더 기술력만 뒷받침된다면 세계대회에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도 제2의 장미란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가능성을 향해 오늘도 제2의 장미란을 꿈꾸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여자 역도 국가대표 김소화 선수는 역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운동능력과 기술이 하나가 되어 바벨을 들었을 때 그 성취감은 짜릿했다.”

어떻게 처음 손에 초크를 묻히며 바벨을 잡았나? 대부분 선수가 역도를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하는데 난 2학년 때 시작했다. 여자중학교에서 인기 없는 역도부를 좀 더 활성화하자는 의미에서 인원을 채우기 위해 모집했었다. 당시는 장미란 선배님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였는데 이런 파급효과로 역도는 좀 커야 된다는 생각에 모집인원이 많았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피구공을 던지는 남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역도를 권유하셨는데 처음에는 역도가 좀 무식해 보여서 거절했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진로 걱정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 역도를 택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진로를 고민했었다는 게 믿기질 않는데… 동기들보다 좀 더 성숙했었던 것 같다. 당시 동급생들을 제압할 정도로 힘이 많이 셌었고 이런 힘을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역도선생님이 ‘역도해볼래?’ 라고 다시 물어봤을 때 적절한 시기상의 질문에 결심하게 되었다. 평소 근력이 세서 운동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된 역도생활로 고등학교까지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재능, 그러니깐 중학교 때 근력이 좋다는 사실을 발견한 게 역도에 도움이 되었나? 동기부여만 되었지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필요 없었던 것이 근력이었다. 근력이 좋다고 의식되니 중량을 기술이 아닌 근력으로만 들려 해 고치는 데 많이 힘들었다. 역도는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력이 바탕이 된 기술로 하는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근력만 좋다고 해서 역기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렵게 나쁜 습관들을 고쳐냈다.
언제부터 역도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나?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 때는 점점 기록이 늘어났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국가대표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전국체전에 나갈 만한 성적이 되지 않았는데 2학년 올라가서 은메달을 따고 3학년 때 2관왕을 하면서 기록이 계속 올라갔다. 처음 운동할 때는 조금 부진했지만 성적이 점점 좋아졌다. 기복이 있거나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큰 부상이 한 번도 없어 계속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의 좋은 성적보다 부상과 기복이 없는 것이 더 복이 아닌가 싶다.
진로 때문에 선택했던 역도!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쁜 생각들이 많이 자리 잡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 시작할 때는 58kg이었는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체중이 10kg가량 늘었다.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점점 빠지긴 했는데 그땐 정말 내가 싫었었다. 근육이 아니라 대부분이 지방으로 덮힌 내 몸을 항상 역도라는 핑계로 방치했었다. 또한, 자세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쇄골에 자주 찰과상을 입었다. 쇄골이 심하게 패이다 보면 상처를 동반한 고통이 뒤따른다. 아무리 역도선수지만 여자이기에 그런 상처들이 남을 때면 여성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체감했다. 그리고 일주일내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사회와 단절되어 있을 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크게 운동에 지장을 주진 못했다. 단순해서인가?(웃음)

여성미와 동떨어진 종목인데 이런 이유로 받는 상처는 없는지? 역도는 외적인 상처를 많이 입는 종목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앞에도 말했지만 쇄골과 손, 정강이뼈 등에 굳은살이 박이면서 생기는 상처들! 특히 손이 예쁜 평범한 여자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많은 중량을 다루다 보니 근육량도 많아야 되고 자연스레 체중이 많이 나간다. 특히 역도 선수는 하체가 생명이라 다리가 많이 굵어 어떤 기성복도 어울리지 않는다. 라인이 들어가는 청바지를 입은 기억이 없다. 늘 긴 치마나 면바지밖에 못 입는다. 바벨을 끌어올릴 때 정강이를 스쳐서 올라오기에 정강이에는 줄처럼 검은 상처가 항상 있다.
여성미를 잃어가면서까지 역도에 매달리는 이유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 짧은 순간에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렸다는 짜릿함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에 나의 힘과 기술이 하나가 되어 중량을 정복했다는 짜릿함과 성취감!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같이 합숙하며 동료애를 느끼는 즐거운 단체생활이 소속감을 갖게 만들었으며 스스로 운동선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비록 여성미는 잃어가고 있지만 최고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난 이런 모습을 더 좋아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알기에 지금도 역도에 매달리고 있다.
지금 어느 수준의 레벨이며 어디까지를 목표로 삼고 있는가? 지금 북한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와 있다. 몸을 봤을 때 정말 군살 없이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근육량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음식 섭취량도 어마어마했다. 그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국가대표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바벨을 받쳐줄 수 있는 상체가 많이 약해 근력운동으로 보강해야 하며, 기술적인 부분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경기장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들은? 체중조절에 실패해 대회 전날까지 급하게 빼서 경기장에 들어섰다가 극심한 무기력감 때문에 대회를 망친 경험이 있다.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어느 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 체중을 오버하지 않도록 컨트롤한다. 365일 식욕은 변함이 없어 조절하지 않으면 현재 체급을 지키지 못하고 체급을 올려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돼 정말 불리해진다. 특히 휴가 때 식욕을 통제하지 않으면 대회준비가 많이 힘들어진다. 휴가기간이 한 달 정도로 접해보지 못한 음식과 낯선 곳을 여행하며 운동을 하지 않기에 살이 많이 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대부분 시합 때 몸을 잘 맞춰 가서 별 무리는 없었다. 시합에 나갔을 때 저걸 들지 못한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들 수 없다. 이런 기분이 들었던 때가 체중조절에 실패해 무기력했을 때였다. 어떤 요인으로든 절대 진다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국체전에 출전해 인상에서 한국신기록을 깨는 것이 작은 목표 중 하나다. 그리고 내년 아시아 게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계속된 더 많은 노력과 집념이 올림픽 대표로 메달까지 바라보게 할 것이다.
비록 여성미는 잃어가고 있지만 최고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여성미를 잃어가는 것이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글·사진 임치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