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태극 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가끔 특별한 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이 전부 평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목표만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인정사정없는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선수는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펜싱 사브르 부문 오은석 선수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단지 그가 희소성과 스타성을 상징하는 왼손잡이 검객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만인이 인정하는 엘리트 선수임에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낮추고 또 낮추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서 자만하지 않는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 펜싱 무대에 태극기를 아로새긴 오은석 선수는 말한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펜싱을 향한 ‘흥미’와 ‘노력’ 덕분이라고.
살아있는 검의 움직임을 만들어라 찰나의 순간 직선의 칼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곡선을 그리며 정밀하고 빠르게 상대의 허를 찌르며 기교를 부린다. 숙련된 사브르 선수 오은석의 움직임은 칼이 살아 움직여 춤추게 만든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험한 여러 차례 공방의 대치상태에서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동물적인 반응으로 신중히 검을 지휘한다. 상대보다 먼저 더 빨리 칼이 몸에 닿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에 퍼져 쾌감에 빠져든다.

왼손잡이 검객 오은석, 사브르를 정복하다. 한국 펜싱의 성장에는 남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특히 사브르가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여자 개인전 금메달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대회에서 64강도 벅찼던 한국 사브르가 이젠 유럽 강호들이 먼저 동반훈련을 제안할 정도다. 그간 쌓아온 한국 선수들의 숨은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한때 사브르 세계랭킹 1위까지 오른 남자 사브르의 주역, 오은석 선수를 만나보자.
오은석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단 소속 / 1983년 4월 2일 / 181cm / 76kg
[경력사항] 2004 제28회 아테네올림픽 남자 펜싱 국가대표 2008 제29회 베이징올림픽 남자 펜싱 국가대표 2012 제30회 런던올림픽 남자 펜싱 국가대표
[수상내역] 2013 체육훈장 청룡상 2013 제18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단체상 2012 제30회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2011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2010 국제월드컵 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금메달 2008 부다페스트 국제그랑프리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언제부터 펜싱을 접하게 되었는가?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학교에 펜싱부가 있는데 혹시 펜싱을 해볼 생각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테크닉보다는 일반적인 운동신경, 센스 이런 부분만 보셨던 거 같다. 사실 많이 생소했지만 칼을 들고 겨루는 운동이라 좀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는 게 솔직한 이유다.
당시 힘들어 보였던 사브르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다닌 중학교에는 사브르만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에페나 플뢰레를 접해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사브르만 해왔다.
비인기 종목인 펜싱을 선택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부모님께서는 힘든 운동을 하는 것에 반대하셨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심한 반대는 없으셨다. 대신 할 생각이라면 확실히 하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는 펜싱을 통한 대학 입학 등 눈앞에 있는 불부터 끄기 급급해 취미활동 정도로 생각했다.
취미활동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말인가? 고등학교 때까지 별다른 목표 없이 취미로 펜싱을 즐겼다. 그러나 대학시절에는 약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어떤 큰 목표를 정하진 않았지만 당장 다가오는 시합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는 시작하는 단계였고, 고등학생이 돼서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등 가까운 장래 계획만 짜서 그에 맞게 실천하려 했다. 만약 그때부터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등 먼 미래의 목표를 잡았다면 오히려 지쳐버렸을 수도 있다.
흔치 않은 왼손잡이인데 사브르 선수로서 유리한 점은? 펜싱 역시 오른손잡이가 많다 보니 대련하거나 연습하는 상대 선수도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다. 수비와 공격 모두 오른손잡이에 맞게 습관이 굳어질 수 있고 대회에 나가서도 이런 습성에 적응해버릴 수 있다. 물론 모든 상대가 오른손잡이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야구에서 왼손타자나 왼손투수가 까다로운 상대라는 점과 흡사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의 광대함을 깨닫다. “처음부터 실력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펜싱의 재미에 빠져 대회에 나가고 대련하고 대화를 나누듯 상대를 파악하고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이 즐거웠다. 입상경력이 초라해 겨우 대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이었다. 나의 검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바로 대학교 동계훈련부터였다.”
대학교 동계훈련이 펜싱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들었다. 맞다. 중·고등학생 때는 결코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이 끝나고, 겨우 턱걸이로 동의대에 합격했다. 입학을 확정하고 미리 다녀온 대학교 동계훈련에서 승부욕이 불타 올랐다. 두 달 동안 함께 생활한 선배들의 월등한 실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고등학교 때와 다른 체계적인 동계훈련은 그동안 내 몸이 훈련에 굶주렸는지 몰라도 짧은 기간에 몰라볼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런 변화가 대회에서도 나타났는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첫 시합인 회장배 대회에서 대학부 개인전 1위를 했다. 이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찾게 되었고, 2002년 대표선발전에서 1위로 태극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 뒤 한국 펜싱 역사상 기록에 남을 성적을 냈다. 이탈리아 트라파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은메달이었다. 이때부터 정식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정점에 있는 현 상황에서 앞으로 목표는? 뛰어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싶다. 그 후에는 교육을 받고 펜싱 코치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뚜렷한 목표로 정한 건 없다. 단, 분명한 것은 지금은 펜싱 외에 다른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오로지 펜싱만 생각할 것이다.
오은석에게 펜싱이란? 먼저 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상대를 이길 수 있었다. 펜싱은 순간의 스릴과 기쁨, 환희 등을 느낄 수 있도록 나를 계속 단련시켰다. 이젠 절대 뗄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신사 스포츠 펜싱의 종목 알기
펜싱 종목은 크게 플뢰레(Fleuret), 에페(Epee), 사브르(Sabre)로 구분된다. 이 종목들은 각각 다른 검과 규칙이 적용되는데 간단한 규칙만 이해해도 펜싱의 재미는 두 배가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매력 만점의 펜싱을 만나보자.

펜싱의 기본 종목인 플뢰레는 검의 끝이 꽃처럼 생겨 프랑스어로 꽃을 의미하는 ‘Fleur’에서 유래됐다. 득점이 인정되는 신체 부위는 얼굴, 팔, 다리를 제외한 몸통으로 주심의 시작 선언 후 먼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선수에게 공격권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수비자의 경우 상대 선수의 공격을 막고 찌르기를 해야 점수가 인정된다.

에페는 그리스어로 검을 의미하는 ‘Speer’에서 유래됐다. 플뢰레와 같은 길이에 큰 가드가 달린 검을 사용하며 장갑을 포함한 신체 모든 부위에서 득점이 인정된다. 플뢰레와 달리 따로 공격권이 없으며 먼저 찌르는 선수에게 득점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오은석 선수가 포함된 종목으로 프랑스어로 검을 의미하는 ‘Sabre’에서 유래됐다. 이 종목의 득점 인정 유효 범위는 머리, 팔을 포함한 상체 전 부위다. 프뢰레, 에페와 같은 찌르기 공격 외에 칼날과 칼등으로 베는 것이 가능해 다양한 공격과 빠른 게임 스피드가 특징이다.
사브르 검객, 오은석의 도구 탐구하기

펜싱복 상대 선수 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펜싱복은 안전이 최우선으로 되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펜싱연맹(FIE)에서는 의무적으로 펜싱복의 소재를 케블라로 지정했다. 이 소재는 합성섬유로서 방탄조끼나 헬멧에 많이 사용되며, 소재를 대비해 수직 방향에서는 결코 뚫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 펜싱복 안에는 붉은 전선이 연결돼 있다. 게임을 할 때는 이 것을 엉룰뢰르 케이블에 연결해야 센서가 작동 한다. 엉룰뢰르는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20m 이상의 케이블이 연결돼있다.

검 사브르를 상징하는 검의 끝부분은 안으로 휘어져 있으며 이 부분을 버튼이라고 부른다. 손잡이 부분은 손을 보호할 수 있게 D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국제대회에서는 막대형 손잡이 만을 사용한다. 타 종목과는 다르게 검 자체가 잘 휘어지며 이를 통해 스피드한 경기와 베기가 가능하다. ※ 도복의 소매 중 검을 잡는 방향에도 붉은 전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케이블을 검에 연결해야 상대 선수 득점 부위를 찌르면 센서가 바로 작용해 알려준다.

마스크 베기 위주의 사브르에서는 타격 부위가 머리에 집중될 수 있는데 상대 검의 공격에 머리를 보호한다. 금속성 철망으로 짜여져 있고 테두리까지 전부 철판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사브레 검이 닿았을 때 센서가 작동하게 하여 정확한 판정을 위함이다.

펜싱화 경기 중에 다양한 움직임을 세밀하게 할 수 있도록 미끄럼 방지가 핵심이다. 민첩성을 요하는 펜싱은 순간 스텝이 많은 만큼 뒤꿈치 충격 흡수 효과가 있으며, 편안한 착지감은 물론 발목과 무릎 등에 전달되는 충격을 완화시킨다.
글 임치훈, 이화형 사진 임치훈, 국민체육진흥공단 홍보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