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챔피언이라고는 하지만 하체, 어깨, 전체적인 매스 등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발전하려면 노력뿐이다. 계속 우승하기 위해 좋아하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있는 중이다. 여느 선수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가장으로서 쉽지 않은 도전
대학졸업 후 매형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일과 후 웨이트트레이닝을 즐기던 그에게 2009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사장이었던 매형에게서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계획을 듣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했었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였지만, 평범하지 않은 어려운 판단을 내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보자’고 결심한 것.
예전부터 취미활동으로 해온 보디빌딩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보디빌딩 실업팀 선수의 연봉과 자격조건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32살이었고 네 살배기 딸이 있는 아빠로서 쉽지 않은 도전을 한 것이다. 가족이 있는 경기도를 떠나 고향 전북에 혼자 내려오게 된다.
자기관리의 본보기, 박경모 선수와의 만남
친형이 고등학교 때 보디빌딩을 좋아해서 집에 찾아오는 친구와 선배들은 대부분 운동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중에 박경모(2012년 -60kg 전국체전 금메달) 선수도 있었다. 보디빌딩을 시작하겠다는 강우석 선수의 말에 형은 빌더 생활을 하려면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유명한 박경모 선수에게 배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2009년 4월 무작정 박경모 선수를 찾아갔고 무지했던 그는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던 박경모 선수에게서 보디빌딩을 위한 진짜 생활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그는 박경모 선수의 자기관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10년 전부터 밤 10시 이후에 경모 형님을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다. 만약 봤다고 해도 상갓집이나 어쩔 수 없는 행사가 전부였을 것이다.”
집이나 다름없었던 헬스클럽
가족을 남겨두고 전북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그는 박경모 선수가 운영하는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게 된다. 오직 ‘선수’만 생각했던 그는 다른 바깥일이 없어 모든 것을 체육관에서 해결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잠깐 낮잠을 잔 뒤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일했고 자정이 다 될 무렵 한가한 틈을 타서 저녁운동을 했다. 그러고 나면 하루가 갔고, 집으로 가는 시간이 아깝고 귀찮아서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2009년 YMCA 대회를 준비할 때는 3개월 동안 체육관 밖에 나간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2010년 전북으로 내려온 아내와 딸 덕분에 이런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아무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그의 꿈 ‘보디빌딩’
보디빌딩 선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크게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취미로 할 것이지 왜 굳이 늦은 나이에 운동을 하겠다고 나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선택하는 그를 본 아내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같이 잘 지내던 가족을 두고 혼자 고향인 전주에 내려가 생활하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했던 트레이너 생활 외에는 트레이너 경험이 없던 그는 한 달 임금으로 100만 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보디빌딩을 하기 위한 식비와 보충제 값을 충당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아내가 치위생사였기에 경제적인 부분이 다소 해결되었지만 애가 딸린 가족으로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가족이 떨어져 산다는 것도 문제였다. 말이 주말부부였지 여건이 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본 적도 있었다. 한창 귀엽고 예쁜 딸을 두고 자신의 꿈 때문에 가족을 힘든 상황으로 내몬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더욱 열심히 운동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그렇게 힘들게 준비했던 미스터 YMCA대회에서 다이어트 실패로 4위에 머물고 만다.

전국체전 금메달로 이끈 ‘호르몬 불균형’ 판정
그는 2010년부터 계속 트레이너로 일하며 대회에서 점점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시작했다. 미스터 전북에서 체급 1위, 미스터 YMCA에서 2위, 전국체전에서 6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실업팀 소속에 가장 많이 반영되는 대회가 전국체전이었기에 2011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전국체전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2012년에는 실업팀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해마다 거듭되는 도핑 사례로 보디빌딩이 전국체전에서 폐지될 위기를 맞게 되면서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도핑테스트를 강화했던 게 그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1차 사전도핑검사에 이어 2차에도 ‘호르몬 불균형’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것. 이런 판정이 선천적인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는 정밀검사로 가려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충분치 않아 부적격 판정을 받고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해 전국체전 장소가 경기도였고 보디빌딩 대회장은 처갓집과 가까운 일산시여서 장인어른과 부모님이 같이 관람을 위해 경기장에 오시기로 돼 있었다. 성적에 상관없이 자신의 가능성을 가족들에게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자리였고, 또한 이번 기회에 뜻깊은 가족 만남도 가질 수 있었는데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홀로 숙소에서 나와 처갓집에서 하룻밤 묵은 후 아침 일찍 허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지만, 계속되는 안부 전화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술이나 진탕 마시고 잠이나 잘까?’ ‘연락을 끊고 여행이나 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막상 짐을 풀고 잠시 쉬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만둘 것 아니니 운동이라도 더 하자’라고 마음먹고 그날부터 2012년 전국체전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하며 운동했다.
2012년 내내 그렇게 힘들게 준비해온 그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전국체전이 다가왔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전도핑검사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호르몬 불균형’ 판정을 받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정밀검사를 의뢰할 수 있게 되었고 ‘선천적’이라는 원인으로 밝혀져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2011년에도 정밀검사를 실시했더라면 아무 문제 없이 출전할 수 있어 억울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는 이런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12년에 금메달이라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2011년에 전국체전에 나가 전보다 나은 성적으로 입상했더라면 해이해졌을지도 모른다. 뛰지 못한 마음을 운동과 절제된 생활로 승화시킨 게 전국체전 금메달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챔피언으로 이끈 또 다른 이유 “우리 아빠 국가대표선수야”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좋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젊었을 때 잠깐 하며 거쳐 가는 직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트레이너란 말 그대로 남을 훈련시키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심신과 육체를 단련함으로써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좋은 직업임에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적이다. 강우석 선수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엄연한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있음에도 부모님은 ‘너는 직업이 없어서 어떡하느냐?’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문제는 아내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로서 딸이 떳떳하게 ‘우리 아빠는 보디빌딩 국가대표 선수야’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거나 실업팀 보디빌딩 선수라고 말하는 것이 트레이너라고 하는 것보다는 좋겠지 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운동했다.
트레이너가 창피한 직업은 아니지만 혹시나 아빠 때문에 딸이 창피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그가 덧붙여 “자식 가진 보디빌더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좀 더 좋은 성적으로 그동안의 성적으로 보답해 자랑거리가 되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딸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금메달로 보디빌딩 국가대표에 이어 울산시체육회 소속으로 계약되는 실업팀 선수로서 그리고 트레이너로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비슷하면 지는 거다.” 향후 5년간 챔피언 방어가 목표 자신과 같은 체급에서 뛰었던 김형찬 선수가 -70kg 체급에서 5번이나 우승을 한 적이 있다. 강우석 선수는 김형찬 선수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75kg 선수가 -70kg 체급을 뛰는 것처럼 기량 차가 확실했다. 누가 봐도 1위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나도 저렇게 되리라 마음먹었다. 비슷하면 지더라도 승복해야 한다.” 자신도 2012년 전국체전에서 1위를 했지만 -70kg 체급에 워낙 쟁쟁한 선수가 많고 컨디션에 따라 순위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에 확실한 승리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2위 선수의 팬이 보더라도 1위로 인정할 수 있도록 확실한 차이가 나도록 몸을 더 만들어 2012년부터 시작해 5년 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다. 하지만 올해는 김형찬 선수의 복귀 소식이 있고 2012년에 챔피언 자리를 아쉽게 놓친 장재우 선수가 재탈환을 노리고 있어 쉽지 않은 대결이 예상된다.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성장을 느끼는 그이기에 2013년에도 충분한 가능성이 보인다.
선수생활은 짧게! 가족과의 시간은 길게! 2011년 울산시에서 견습생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으면서 형편이 점점 나아졌지만 2009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당연히 아내다. 소속 선수로서 노력할 수 있도록 힘들지만 믿고 따라주었던 것이다. 선수의 길을 택한 뒤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할 수 없는 상황을 정말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보디빌더는 가족에게 절대 잘해 줄 수 없다. 예를 들면, 가장 기본적인 저녁식사가 그렇다. 가족이나 부부간에는 집에서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때 모든 대화가 시작되며 유대관계가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디빌더는 식사시간을 엄수해야 하기에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같은 자리에서 먹는다고 해도 똑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절제해야 하는 생활습관으로 여행과 사회활동이 제한적이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족의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곧 오픈 예정인 PT숍과 좋은 성적으로 실업팀 선수로서 5년간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했던 가족들이 행복해할 때까지 희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 Something About Him ]
자신의 신체부위 단점은? 개인적으로 몸을 판단하면 맘에 드는 부위가 솔직히 하나도 없다. 모든 부위가 다 미완성인 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콕 찍어 말하면 하체가 많이 부족하다. 특히 매스 면에서 많이 부족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어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의 신체부위 장점은? 다이어트가 제일 먼저 되는 곳이 이두근이다. 이두근 중에서도 안쪽이 그마나 마음에 드는 부위다. 바깥쪽은 사이드 체스트를 잡을 때 둔탁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안 드는 반면, 더블바이셉스 포즈 때는 이두근의 봉우리가 솟은 것처럼 예쁜 모양으로 동그랗게 나온다.
군대에서 잊지 못할 추억은? 군인은 아니었고 의경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 그 묘미에 빠져 의경으로 복무하던 중 계급이 낮을 때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 불침번 근무가 끝나고 나면 누가 볼까봐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잡고 덤벨 한쪽을 들고 팔 운동과 등 운동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선수생활을 그때부터 준비했던 게 아닐까?
가장 좋아하는 세트수는? 모든 메인운동은 10세트를 좋아한다. 한 자리 숫자로 그만두면 뭔가 찜찜하고 운동을 하다 만 것 같다. 꼭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
현재 계획 중인 일은? ‘머슬짐 & 다이어트푸드’라는 헬스클럽을 이달 안에 오픈할 예정이다. 원래 레스토랑 자리라 복층으로 되어 있어 위층은 다이어트 관련 스낵바를 하고 1층은 헬스클럽으로 계획하고 있다. 아내가 작년 12월에 직장을 그만둔 터라 경제적인 모든 면을 내가 다 감당하기로 해서 더 부담감이 크다. 올해 좋은 성적과 함께 사업도 잘되기를 바란다.
대회가 끝나면 무엇을 먼저 하나? 체전에서 우승한 그날도 대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가정용 실내자전거를 탔다. 그 뒷날도 휴식 없이 똑같은 운동 사이클로 돌아간다. 이젠 운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성적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거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운동하는 시간이 즐겁고 좋아서다. 아내가 타는 나를 보고 ‘오늘 대회 끝났는데 왜 자전거를 타냐’며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당일 먹은 것으로 체중이 불까봐 그냥 타게 되었다. 세계대회가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도착해 공항에서 가까운 처갓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앞 체육관에서 바로 운동했다. 보디빌딩은 이제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내 생활의 일부다.

강우석 선수가 즐겨 사용하는 이두근 테크닉
드롭세트
마지막 세트나 그전 세트까지 최소 두 번 이상은 이두근 루틴에 꼭 포함시킨다. 완전히 지치게 만들면 펌핑감은 물론 근육통이 배가된다. 하고 난 뒤 그 짜릿함을 경험해 보라! 근육이 성장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트레이너
내다른 직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을 훈련시키는 일을 한다. 지도하는 과정에서 교육적인 측면도 있지만 육체적인 면에서 볼 때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힘든 과정에서 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건강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들을 가르치는 의미 있는 직업군이다.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직업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경제적인 면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 만약 내가 헬스클럽 사장이 된다고 해도 ‘관장’이나 ‘사장’이 아니라 ‘트레이너’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용을 입력하세요.
웨이트트레이닝
내용을체육관에서 덤벨이나 바벨을 든 내 모습을 보면 멋있게 느껴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근육의 성장을 위해 극심한 근육통을 이겨내고 체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최고라고 느낄 수 있다. 운동이 끝나고 나서의 뿌듯함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보디빌딩도 보디빌딩이지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나를 단련하는 그 자체가 좋다.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며, 미래나 꿈,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으며 힘이 빠질 때까지 무거운 중량으로 근육을 채찍질한다. 입력하세요.
헤비급
계속된 우승과 곧 오픈 예정인 헬스클럽에서의 성공으로 경제적인 여건이 해결된다면 그때는 전국체전뿐만 아니라 체급을 올려 더 큰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 정말 여건만 허락한다면 매스를 더 키워 아놀드 클래식이나 아마추어 경기에도 출전해보고 싶다. 모든 선수의 로망이 헤비급인 것처럼 나 또한 몸이 더 커지길 원하는 사람 중 하나다. 우리나라 헤비급 선수 중에서도 빨리 본보기가 되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글 임치훈 사진 신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