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0일은 대부분 사람들에겐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멜리아 분에게 그날은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그녀가 장애물 경주 복귀전을 치른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게 뭐냐고요?
경주에 복귀하는 겁니다.
어떤 스포츠가 당신의 소명이라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대회 참가를 결정했는데 1년 안에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그 후로도 쭉 높은 순위를 유지한다고 상상해보자. 아멜리아 분이 바로 그랬다. 아멜리아는 남녀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장애물 경주 선수다. 50회 넘게 시상대에 섰고 30회나 우승했다. 그런데 2016년, 부상으로 대회 출전을 중단해야 했다. 대퇴골 스트레스성 골절. 결국 1년 반이나 재활에 발이 묶였다. 그중 4개월은 목발을 짚고 지내야 했으며, 9개월 동안은 달리지도 못했다. 매일 두 번씩 트레이닝을 하고, 매주 128~160km를 달리고, 주말마다 장애물 경주에 참가했던 그녀에게는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5월 20일은 아멜리아가 부상을 당한 이후 처음으로 장애물 경주 코스에 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아멜리아는 두려웠다. 그녀는 “출발선에 서서, 한때는 너무나 익숙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낯설어진 그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고, 몸에 녹이 슨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장애물 경주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그날 내 자전거에는 무거운 짐이 실린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최종 순위는 2위. 그녀는 결승선을 통과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우승하지 못해서 우는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작년에는 내가 다시는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 때문에 운 것이다.”

육체적인 부상을 견디는 것은 쉽다.
우리를 진짜 괴롭히는 것은 정신적인 부상이다.
부상당한 운동선수는 재활 과정에서 몇 번씩 밑바닥을 경험하곤 한다. 아멜리아도 다르지 않았다. 운동량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목발만 짚고 다니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은 아멜리아는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곧 부상을 피해 훈련할 방법을 찾아냈다.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운동선수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했다.
아멜리아는 “첫째 달에는 수영장에 들어가 다리 사이에 부표를 끼우고 수영하는 것이 전부였다. 발차기도 금지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 썼다”고 말했다. 곧 수영을 졸업하고 로잉 머신으로 넘어갔고(한쪽 다리만 사용해서) 헬스클럽에서 빈약하나마 운동을 계속하며 상체 근력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진정한 의미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한 셈이다.
이러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때 그녀가 ‘등산에 최적화된 거대 대퇴사두근’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던 하체 근육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미래에 의문을 품게 됐다. 블로그에서는 ‘골절이라는 병에 감염돼’ 대회를 쉬고 있다며 무미건조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집에서는 농담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처음 두세 달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일시적인 후퇴야. 곧 돌아갈 거니까 별일 아니야.’ 하지만 몇 달이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18개월이 되자 운동선수로서 끝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는 출발선에 설 수 없고, 돌아가더라도 예전 같은 운동선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 말이다. 아무런 확신도 없이 다시 초보자의 입장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돌아가자마자 세계 챔피언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정말 겸손해졌다.”

이걸 컴백이라고 부르지도 마세요.
아멜리아는 기나긴 자기 성찰 끝에 더는 아멜리아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은 운동선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선수, 더 영리한 선수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멜리아는 자신의 두려움과 깨달음에 관한 글들을 블로그에 솔직하게 남기곤 했다. “그런 글을 올릴 때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기도 했다. ‘슬프구나! 아멜리아가 이제 우승을 못할까 봐 두려운가 봐!’라고 반응할 거 같았다. 하지만 어떤 종목에서 뛰는 운동선수든, 프로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는 시기가 온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공감해줬다.”
새롭게 태어난 아멜리아는 트레이닝에 변화를 줬고, 뒤를 돌아보는 대신에 앞을 내다봤다. 아멜리아는 “일어나자마자 하이킹을 하는 대신에 수영장으로 갔다. 몸에서는 흙냄새 대신에 소독약 냄새가 났다. 비록 나는 경주에 참가할 수 없지만 경기장에 가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자원봉사도 했다. 그렇게 경기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바쁘게 지냈다”고 말했다.
수개월의 물리치료와 가동성 훈련 끝에 곧 목발을 내려놓게 됐고, 2016년 말에는 드디어 달릴 수 있게 됐다. 아주 조금. 부상 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트레이너와 보행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걸음걸이를 바꿨고, 다양한 방향으로 실시하는 가동성 트레이닝과 근력 운동도 프로그램에 추가했다. 달리기 선수들은 항상 한쪽, 즉 앞으로만 운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7년 봄, 드디어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짧은’ 하프마라톤에 참가해 하체, 정신력을 시험해봤다. 둘 다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5월 20일에 ‘골절에서 해방된 이후’로는 처음으로 스파르탄 레이스에 참가하게 됐다.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
두려움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이다.
이 기사를 쓸 당시에 아멜리아의 계획은 우선 장애물 경주에 5~6번 참가한 후 노스레이크에서 열리는 ‘스파르탄 레이스 월드 챔피언십’과 ‘터프 머더 레이스’,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지금도 두려움이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자세로 대처하고 있다. 아멜리아는 “내 몸을 다시 믿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몸이 아프고 쑤실 때마다 몸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다시 부상당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운동선수의 삶이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모든 인용문은 아멜리아의 블로그인 ‘레이스 사실 추정’에서 발췌했다.

전과 똑같은 운동선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선수, 더 영리한 선수가 되기로 했다.
어떻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가? 변호사와 운동선수 말이다.
난 두 가지 열정을 품고 있는데, 운 좋게도 둘 다 추구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은 많지 않지만 지금의 삶이 매우 만족스럽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중심에 놓고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자. 그러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운동은 언제 하는가?
아침형 인간이라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하이킹을 하러 간다. 7시면 끝난다. 그리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저녁에 가동성 트레이닝과 근력 운동을 한다. 장애물 경주가 힘든 점은 뒷마당에 코스를 만들어 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경주에 필요한 기술을 다른 방식으로 습득해야 한다. 근력 운동은 악력과 무거운 물건 나르기에 초점을 맞추고 실시한다. 시카고에 살 때는 공원에서 투창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냥 기다란 막대기를 표적에 던지는 것이었지만 결국엔 경찰에게 쫓겨났다.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물 경주 훈련이 도움이 되는가?
큰 도움이 된다. 아침에 훈련할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계획이나 전략도 짠다. 하루를 정의하는 시간이다. 어떤 일을 반드시 끝마치고 싶으면 바쁜 사람에게 맡기라는 말이 있다. 난 그 말이 옳다고 본다. 부상당했을 때는 오히려 여유 시간이 너무 많아서 생산성이 떨어졌다. 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 더 생산적이다.
예전에는 울트라마라톤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제 그 생각은 접었는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다. 마라톤은 내가 다음으로 정복해야 할 도전 과제라고 생각해왔다. 장애물 경주를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지만 다음 목표는 울트라마라톤이다. 물론 당분간은 참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먼 거리는 달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부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달리기 자세를 운동 역학적으로 손보는 중이다.
무엇을 손보고 있는가?
골반과 둔근 주변 근육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해당 근육들이 제대로 움직인다. 웃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PT 체조나 클램셸 같은 운동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달리기나 대회 성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할 때 엉덩이에 힘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려고 엉덩이를 자주 만진다.
장거리 경주를 할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계속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장거리 경주를 할 때는 스스로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경주마다 노래가 다르다. 지금까지 참가한 대회를 돌아보면 대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씩 있다. 다른 선수와 대화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집중함으로써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도 비결이다.
생애 최고의 경주는? 난생처음 참가한 스파르탄 레이스였다. 2012년에 열린 ‘울트라 비스트’ 대회로 45km였다. 터프 머더 레이스에는 참가해봤지만 울트라 비스트는 차원이 달랐다. 버몬트주 킬링턴의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완주까지 아홉 시간이 걸렸지만 ‘끝내주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르탄 레이스와 터프 머더를 비교한다면?
스파르탄이 좀 더 거칠다. 더 많은 투지가 필요하다. 다른 경주에서는 보기 힘든 양동이 나르기나 통나무 나르기 같은 종목이 있다. 스파르탄 레이스는 거대한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코스를 산에 만드는데, 그 점도 마음에 든다. 반면에 터프 머더는 크고 화려한 장애물이 많다. 장애물이 모두 재밌고, 완성도도 높다.
SNS에 보니까 레슬링이 좋다고 썼더라. 정말인가?
프로 레슬링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창피해하지만 난 전혀 창피하지 않다. 운동선수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라고 보면 된다.
진실의 시간이다. 경주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는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맥주가 날 싫어한다. 그래서 맥주 대신 와인을 마신다. 난 품격이 넘친다.

장애물 경주가 힘든 점은
뒷마당에 코스를 만들어 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경주에 필요한 기술을
다른 방식으로 습득해야 한다.
아멜리아 분
생년월일 : 1983년 9월 27일 / 거주지 :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직업 : 애플 전속 변호사, ‘스파르탄 레이스 프로 팀’ 팀원 / 스폰서 : 리복, 락테이프, 비트엘리트, 스파르탄 레이스
주요 수상 경력 : 터프 머더 레이스(우승: 2012, 2014, 2015), 2013년 스파르탄 레이스 월드 챔피언, 데스 레이스 피니셔(2012년 여름과 겨울, 2013년 여름)
글 라라 맥글라샨(Lara McGlashan, MFA, CPT) 사진 코리 소런슨(Cory Sorens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