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딩이란 종목이 낯설기만 했던 1990년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체전 일반부에서 그 당시 볼 수 없었던 강도로 선배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이진호 선수!

6년 만에 모든 국내 대회 타이틀을 휩쓸다! 지금은 미스터코리아가 되기 위해 몇 년을 도전해야 하며 그래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요 근래 몇 년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스터코리아’ 타이틀은 하늘이 내린다고 할 정도로 국내 모든 보디빌더의 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타이틀을 그는 22세에 거머쥐었다. 국내 간판스타 IFBB PRO인 김준호 선수(20세에 미스터코리아 타이틀 획득)가 없었다면 최연소 미스터코리아라는 타이틀은 그의 몫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다. 이런 그에게 미스터코리아는 큰 사건도 아니었다. 연이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으니 불과 5년 만이었다.

그가 이처럼 엄청난 성장속도를 보였던 것은 운동 집안에서 근육이 빨리 형성되는 체질을 타고난 덕분이었다. 고등부 때도 얼마 되지 않아 YMCA에서 1위를 차지했고 그 후 대회에 나가면 시상식 단상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었다. 남들은 10년, 아니 평생을 해도 얻지 못할 타이틀을 성인이 된 지 2년 만에 손에 넣었다.

보디빌딩, 내 삶이자 인생의 전부 그의 보디빌딩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다른 잡지나 동영상 인터뷰를 보면 매크로 같은 답변만 반복했기에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 물었으나 역시나 똑같은 대답이었다. “초등학교 때 체조를 했고 중학교 때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 운동을 했었다. 그래서 공부는 이미 뒷전으로 밀려났었고 고등학교 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운동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그때 ‘이게 내 직업이구나.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열심히 운동했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불과 17세의 나이에 강해 보이고자 하는 수단도 아니고 슈퍼맨이나 아놀드 슈워제너거와 같은 근육 스타를 동경한 것도 아니라 자신의 길임을 깨닫고 매진했다니…. “운동이 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 다른 걸 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은퇴를 해도 평생 운동할 것 같다. 보디빌딩이 곧 내 삶이며 인생의 전부다. 이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한평생을 보디빌딩에 바쳤고 지금도 보디빌딩만 바라보고 있다. 매일 똑같은 지겨운 일상과 패턴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안 보이는 작은 변화까지 신경 쓰며 더 많은 근육을 얻어 훌륭한 보디빌더가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약점 극복을 위해 탄생한 백포징의 결정체 그는 근육을 쉽게 만드는 반면 체형에 단점이 있었다. 흉곽이 두껍고, 어깨가 좁으며 목이 짧았다. 게다가 허리도 조금 굵은 편이다. 미학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는 이런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체형이 좋은 사람을 이기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선수에게 볼 수 없는 것, 다른 선수가 잘 만들지 못하는 곳을 공략하자고 전략을 세웠다. 남들과 다른 강도로 운동해 근육의 질감 을 강조했다. 또 대부분 선수가 약한 등 하부와 둔근, 슬굴곡근을 더 많이 운동했다. “왜?”라는 질문에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슬굴곡근이 선명하고 강도 높은 선수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드물다.

시행착오로 변한 그의 영양섭취? 90년대 초만 해도 다이어트 방법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국제대회에 참가해 예상 밖의 성적으로 주위의 눈총을 받았던 그는 다이어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시절 유일하게 정석 보디빌딩 방법대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던 한동기 선수를 찾아갔지만 노하우를 쉽게 전수해줄 리 만무했다. 정말 어렵게 전수받았고 적용하는 시점부터 몸이 확 변하기 시작했다. 잡지를 통해 눈으로만 봤었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는 처음이었다. 시즌기에는 닭가슴살 같은 담백한 음식 위주로 섭취했고 탄수화물과 지방을 줄여나갔다. 무조건 지방질만 안 먹으면 된다는 식단을 고수하던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이런 변화로 그는 전국체전에서 바로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운동 머리는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식단의 변화를 경험한 후 운동하면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운동 스타일은 한결같다.”

강경원 vs 이진호 ‘라이벌’의 대결 보디빌딩 마니아라면 ‘강경원 VS 이진호’ 선수의 대결을 가장 빅 이슈로 꼽는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매칭이다. 강도냐 자연미냐를 놓고 적잖은 공방전이 펼쳐졌었다. 실제 경기 기록으로는 강경원 선수가 우세하지만 국내에서 강경원 선수를 이긴 선수는 이진호뿐이다. 하지만 그는 강경원 선수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서로 도움이 많이 됐다. 다 지난 일이고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데 각자의 위치에서 잘되었으면 좋겠다. 마니아들이 만들어준 라이벌인데 나도 사람이라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하하”

“내가 보디빌딩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것. 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대회에 출전할 생각이다.” 그의 말대로 국내대회 성적에 아쉬운 마음도 이젠 없을 것 같다. 왜냐고? 그는 기복 없는 컨디션으로 마니아들에게 항상 인정을 받았으니까!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최고의 몸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작은 부상을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돌아오지 않을 자신만을 위한 운동시간에 정말 열심히 운동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지가 멀쩡하고 그보다 젊다면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좋지 않을지는 몰라도 강인하고 아름다운 신체의 미학을 좇아라! 이제부터 운동하는 데 궁색한 변명은 필요없다.”
글 임치훈 사진 대한보디빌딩협회 신정수, 임치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