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world's limit 1st PRO BODYBUILDER
프로 보디빌더 김준호 스토리
한 가지 일이나 기술에 열정을 아끼지 않고 전념하여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른다. 한국 최초로 근육 하나로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준호 선수는 ‘근육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기다림으로 30년간 자신의 몸을 조각해온 그는 이젠 세계무대의 벽을 넘으려 한다. 15년 공백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끈질기게 담금질하며 달려왔을까? 김준호 선수가 가슴 터놓고 밝힌 굴곡진 삶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너거’를 비롯해 운동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로니 콜먼’, ‘제이 커틀러’는 모두 프로 보디빌더들이며 올림피아 우승자들이다. 이들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다른 세계에 사는 우주인으로 취급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근육을 자랑해 아시아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프로 선수 대열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바다 건너 먼 이웃 나라의 얘기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올림피아에서 한국 선수를 응원할 일이 생겼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벤 웨이더 다이아몬드컵에서 한국인 최초로 IFBB 프로카드를 획득한 살아있는 전설 김준호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5월 16일 영국에서 열린 보디 파워에 참가해 압도적인 균형미와 컨디셔닝을 선보여 종합우승으로 승점을 보태 올림피아 212 진출권을 확보했다. 올림피아에서도 이젠 ‘대한민국’을 외칠 날이 곧 다가온다. ‘동양인은 프로 보디빌더가 될 수 없다’는 오랜 편견을 깼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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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보디빌더 김준호] 타이틀: 1985 YMCA 학생부 우승 / 1986 미스터코리아 학생부 종합우승
운동장에서 헬스클럽으로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맞았다. 사춘기 소년의 왕성한 남성호르몬 탓인지 그도 남자의 강함을 증명하려는 습성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아무 이유 없이 운동장에서 평행봉과 철봉에서 턱걸이와 딥스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몇 개씩 되니 그 재미에 매일같이 철봉에 매달려 맨몸으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체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몸까지 변해갔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를 헬스클럽에 데려갔다. 자식 자랑이 삶의 에너지였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남들보다 일찍 자식농사에 성공한 것을 자랑 삼아 아들과 같이 운동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보디빌딩의 시작점이었다. 운동을 하나씩 배우니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운동할 때보다 훨씬 더 빨리 근육이 발달했고 이 재미에 푹 빠져 매일같이 헬스클럽을 찾았다.

1985년 Mr, YMCA 학생 단신부 첫 우승
추억거리로만 생각했던 대회 출전 매일같이 취미생활로 운동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갈수록 몸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같은 헬스클럽에 다니던 선배와 아저씨들이 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못 이기는 척하며 고등학교 2학년 때 YMCA 대회 학생부 단신부에 출전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기억할 만한 좋은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둘 생각으로 출전했던 대회에서 뜻하지 않게 우승했고, 그 후 고등부 모든 부문을 석권했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1위에 오름으로써 어린 김준호 선수는 자신의 근육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고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체전 정식종목으로 인정되지 않아 특기생 진학이 어려운 시절이라 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Training
1984년 무렵 헬스클럽은 항상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위치했다. 그 시절에는 벤치프레스와 역도에서 쓰는 옷걸이 식 스쿼트 렉이 유일한 프리웨이트 기구였다. 머신이 없었다. 당시 그가 운동했던 종목은 스쿼트, 바벨 숄더 프레스, 턱걸이, 벤치프레스였는데, 이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데드리프트는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정말 기본에 충실했던 때였다. 이렇게 기본기를 충실히 닦은 것이 지금의 몸을 만든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Nutrition
3끼 식사가 유일한 영양공급원이었다. 보충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Menu
일반적인 한국인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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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보디빌더 김준호] 타이틀: 1989 미스터코리아 종합우승 / 1989 미스터아시아선수권대회 -70kg 우승 / 1989 세계주니어보디빌딩선수권대회 -70kg 우승1993 월드게임 -70kg 우승 / 1996 세계선수권대회 -75kg 준우승 / 1997 세계선수권대회 -75kg 우승
최연소 미스터코리아중앙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생 신분으로 나갈 수 있는 미스터 유니버시티에 출전했다. 그때까지 승승장구해온 그는 쟁쟁한 선배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충격에 빠졌다. 줄곧 1위만 하던 자신이 2위로 밀려나자 승부욕에 불탄 김준호 선수는 벌크 업 기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영양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부족했고 보충제도 없던 시절이라 닭백숙을 5끼니로 나눠서 먹었다. 이렇게 체중을 늘려 일반부에 버금가는 몸으로 성장한 그는 1988년에 재도전해 1위와 함께 종합우승까지 차지하며 선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협회는 국가대표로 세계주니어대회에 나갈 것을 제안했고 제안에 승낙한 그는 아시아선수권대회 1위, 세계대회 2위를 차지해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이 외국 시합 한 번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해외 선수들을 보면서 세계에서 어떤 몸이 통하는지 확인했고 앞으로 어떤 몸을 만들어야 하는지 깨우쳤다.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1989년, 마침내 21세로 최연소 미스터코리아에 등극했다.

1989년 Mr. Seoul -70kg 우승 및 종합우승(좌) / 1997년 세계대회 -75kg 우승 후(우)
보디빌딩의 간판스타1988년 보디빌딩협회가 설립되면서 우리나라에 보디빌딩을 널리 알릴 좋은 페이스가 필요했다. 대학교 3학년인 그에게 따라붙은 ‘21세 최연소 미스터코리아’라는 타이틀이 메리트로 작용했다. 당시 이슈메이커로 이만한 선수가 없다고 판단한 대한보디빌딩협회는 저변 확대를 위해 김준호 선수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갔다. 이때부터 협회와 좋은 인연을 맺은 그는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국군체육부대에서 계속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세계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활동 영역은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신설한 코치아카데미의 초대 전임강사로까지 이어졌다.
세계선수권대회 -75kg급 첫 챔피언 아시아대회에서 항상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였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매번 높은 벽에 부딪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스터코리아, 국가대표였지만 TOP6에 들지 못한 자신을 보며 보디빌딩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었다. 당시 보디빌딩협회의 한 전무는 그런 그에게 기죽지 말고 자신의 기량이 어느 정도이며 누구와 경쟁해야 하는지 분석하라고 타일렀다. 그런 충고가 약이 되었는지 1997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유럽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75kg급에서 국내 보디빌딩 최초로 우승했다.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 오로지 보디빌딩만 생각하며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였다. 닥쳐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1998년 원현주 선수와 결혼 후 가장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운동을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의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의 의무와 함께 선수 이외에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발전된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선수 이후의 삶에 대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활동을 위해 협회와 여러 번 상의했지만 선수보호 차원과 타 선수와의 형평성을 문제로 번번히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결국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협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내려놓게 된다.
Training
처음 책을 보고 분할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매일 다른 부위를 운동하면 성장이 더디지 않을까?’ 분할 운동을 시작하며 테크닉 운동을 추가로 배웠고 운동량도 점점 늘려갔다.
Nutrition
대학교 새내기 시절 동호회 선배가 먹던 비타민 C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말에 즉시 남대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양한 보충제와 비타민으로 가득했던 수입상가에서 그는 보충제 대신 비타민을 종류별로 구입하여 섭취했고 이듬해 최연소 미스터코리아가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비타민이 에너지 대사에 관여해 근력적인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이 미스터코리아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회상했다.
Menu
- 주 탄수화물: 고구마, 빵, 옥수수, 감자, 쌀밥(어떤 영양소가 가장 적합한지 알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섭취)- 주 단백질: 닭 가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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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보디빌더 김준호] 타이틀: 머슬마니아 오리엔트 프로모터 / 머슬아카데미 원장
김준호를 더욱 강하게 만든 고난과 시련의 회오리대한보디빌딩협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정리한 후 비디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몸매 만들기’라는 비디오를 일본에도 전파할 목적으로 선수 시절 알고 지내던 머슬 잡지 전문 미국인 기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비디오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김준호 선수의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기자는 다양한 사업 계획을 가진 그에게 머슬마니아 회장을 소개해줬고, 그는 김준호 선수에게 머슬마니아 대회 출전을 제안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이었던 그는 정통 보디빌딩 대회와 성격이 다른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라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대회 관람 의사만 밝히고 대회를 참관했다. 미국에서 열린 머슬마니아 세계대회를 보는 순간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잘생기고 멋진 출전자들과 화려한 오프닝에 매료되어 이 대회를 한국에서 성대하게 치뤄보겠다고 결심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머슬마니아 오리엔트’로 프로모터 자격을 얻었지만 국내에선 아직 시기상조였는지 많은 고충을 겪었고 대회 유치도 힘들어졌다. 많은 난관에 부딪치면서 경제적 리스크도 감수해야 했다.
“교육생들에게 ‘보디빌더 같으냐?’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 눈에 정말 보디빌더로 보이고 싶다.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어야 한다. 김준호=보디빌더이고 싶다.”
재기의 발판 ‘머슬아카데미’멋진 이벤트 계획이 무산돼 파산 위기에 놓인 그는 머슬아카데미를 개설했다. 피트니스라는 개념을 대중이 인식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자신은 그동안 ‘머슬마니아 오리엔트’라는 이름으로 제자를 많이 양성해야 대회를 치룰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개원한 것이었다. 미국 머슬마니아도 이런 그의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운영하느라 대회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10년 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으니 자연스레 프로모터 자격은 박탈됐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머슬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그는 원생들을 대상으로 항상 이벤트를 열었다. 원생들에게는 기념으로 남을 사진이니 몸이 허술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두 달 수강 코스 주기로 몸을 끌어올렸다. 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벤트를 원생들과 함께하면서 선수시절보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졌다. 그러면서 복귀 무대를 꿈꿔왔다.
Training
근육을 더 크게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근력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항상 피라미드 방식으로 1RM까지 무게를 다뤘고 이렇게 많은 무게를 다룰수록 더 큰 자극이 주어진다는 과부하의 원칙을 충실히 지켜나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트레이닝의 기반이 지금의 몸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운동방법은 부상이 잦았다.
Nutrition
마음속으로 시합 무대에서의 재기를 꿈꿨다. 언제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항상 시즌 몸을 유지하며 식단관리에 철저히 임했다. 그리고 코치아카데미 초대 강사로 활동하면서 대학교 석사과정도 준비하는 동안 영양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아졌고 보디빌더에게 어떤 영양 섭취가 필요한지 알게 됐다. 마지막 전지훈련에서 그는 크레아틴 보충제를 우리나라 최초로 들여와 BCAA's, 글루타민, 카보 등과 함께 섭취하기 시작했다.
Menu
- 주 탄수화물: 카보 보충제, 빵(빵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빵을 섭취)
- 주 단백질: 닭 가슴살, 단백질 보충제, BC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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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보디빌더 김준호] 타이틀: 2013 NABBA 유니버스 CLASS4 2ND / 2014 벤 웨이터 다이아몬드컵 우승- IFBB PRO CARD 획득
2015 IFBB 뉴욕 PRO 2ND / 2015 IFBB BODY POWER 1ND - 올림피아 212 진출권 확보
협회와의 애증관계자진해서 그만둔 선수생활, 머슬마니아 대회 유치 시도, 이동익 선수의 머슬마니아 프로모션, 머슬아카데미 개원 등 의도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협회와 경쟁구도를 만들고 말았다. 경쟁 대상이 아닌 파트너로 생각해주길 원했지만 보수 성향이 강했던 당시 협회로선 김준호 선수의 이런 활동을 곱게 보지 않는 게 당연했다. 단체가 개인을 견제한다는 것은 그만큼 존재감과 인지도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협회의 냉랭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다시 대회에 대한 갈망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며 협회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복귀 무대는 번번이 취소됐고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레전드의 액션, ‘왕의 귀환’대한보디빌딩협회 소속으론 더는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기대와 기다림은 그만두기로 했다. 더 지체하다간 선수생활을 아예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다른 대회를 찾아보던 중 나바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그 주최자가 자신의 제자인 걸 알고 44세의 나이로 출전했다. 오랜 침묵을 깬 그의 귀환에 마니아들이 환호했다. 전성기 때보다 더 좋은 기량으로 화려하게 복귀 무대를 장식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나바 대회까지 출장해 올림피아 작은 거인 ‘리 프리스트’와 상대하게 된 그는 ‘리 프리스트를 꺾으면 그가 얻을 것을 한 번에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절실한 마음으로 투혼을 발휘해 2위로 입상했다. 이 대회에서 자신도 세계적인 수준의 보디빌더들과 대결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2015 뉴욕프로에서(좌)
1ST IFBB PRO CARD김준호 선수가 나바 대회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한보디빌딩협회는 다른 선수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갈라쇼 형식의 대회인 올스타클래식을 주최하고 그의 출전 의사를 물었다. 조건은 선수활동과 아놀드 클래식 출전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올림피아에 근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올스타클래식에 출전해 종합우승 후 아놀드 클래식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으니 연습 삼아 다른 대회에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협회에 전달했다. 협회는 올해 2회째인 벤 웨이더 다이아몬드컵이라는 대회가 중국에서 열리며 종합우승 시 IFBB PRO 카드를 획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회 대회인 점을 감안하면 출전자가 적을 것이고 대회 장소도 가까워 인생에 찾아올 수 없는 정말 어려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승낙했다. 개최국 선수의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꿈에 그리던 프로카드를 한국인 최초로 획득했다.
“지금 시합에 물꼬가 트여 오히려 신난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내 판이 벌어진 것이다.
멍석 깔아주는데 정말 잘해야지! 꿈에 그리던 미스터 올림피아인데.”
2015 OLYMPIA 212 SHOWDOWN2015년 1월 3일 프로카드가 한국에 도착했다. 이젠 정말 정식 프로 선수가 되었으니 신청만 하면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상대 선수들은 212파운드! 즉 96kg을 꽉 채워서 출전한다. 하지만 김준호 선수는 80kg! 수치상으론 게임이 안 되는 시합이다. 올림피아는 각 지역에서 열리는 프로 대회에서 승점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출전이 가능하다. 그럼 승점을 쉽게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쟁쟁한 경쟁자들이 나오지 않는 대회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택한 대회가 캐나다 에드먼턴 대회였다. 추운 곳이고 처음으로 열리니 출전자가 적을 것이라 생각해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일주일 전 시합이 취소된 것을 확인했다. 이런 상황이면 당황하고 절망하기 마련인데 10년 이상을 대회만 바라보며 기다린 김준호 선수 부부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젠 신청만 하면 대회에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시일에 열리는 대회를 찾아보니 승점이 높은 뉴욕프로대회가 눈에 띄었다. 승점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수준 높은 선수들이 나온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상대할 선수들이니 정면 돌파하자고 마음먹고 미국에 가서 시합을 치렀다. 첫 라인업부터 TOP5안에 들었고 가이 시스테노라는 212의 간판급 선수와 같이 일찌감치 비교심사에서 빠지며 2위를 확정 지었다. 아쉽게 2위에 그쳤지만 뉴욕에서 자신을 알리는 데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구석 한편에는 아쉬운 마음이 간절했다. 왜?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충분히 붙어볼 만한 상대들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빠른 다음 대회를 생각했고 일주일 뒤에 영국에서 열리는 보디파워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년 전 영국 나바 대회장에서 리 프리스트와 경쟁했던 ‘KIM’을 보디파워대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 서니 마치 홈그라운드에서 게임을 치르는 것처럼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올림피아 출전권을 획득했다.
Training
환경이 좋아졌다. 매 기수 원생들의 도움으로 운동 시 해당 부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고급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1RM과 같은 근력운동보단 고립 위주의 운동으로 몸을 다듬어나갔다. 그는 제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준호’도 없다고 할 정도로 은인 같은 존재들이라고 표현했다.
Nutrition
영양학적으로 고단위, 즉 퀼리티가 높은 보충제를 섭취한다.
Menu
- 주 탄수화물: 멥쌀과 찹쌀을 5:5비율모든 것을 시도한 후 쌀밥을 선택한 김준호 선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근육 속에 에너지를 포도당으로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 포도당은 곡식에서 얻을 수 있다. 운동할 때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포도당을 공급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몸의 에너지 원료는 어려서부터 먹어온 쌀밥이다.”
- 주 단백질: 닭 가슴살, 아미노산, BC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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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가 말한다. 무엇이 보디빌더를 만드나?]
1. 운동이 몸을 바꾼다 정말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이 시합 때만 몸을 만든다. 트레이너든, 비키니, 피규어, 피지크, 아마추어 보디빌더든 몸을 보여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365일 중 360일은 운동해야 한다. 선천성, 후천성, 타고난 체형 등은 다 필요 없다. 이 운동은 누가 더 오래 노력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갈린다. 프로 무대에 서기까지 괜히 30년이 걸린 게 아니다. 2. ‘멋’을 잊고 느껴라보디빌더는 근력을 기반으로 훈련하지만 근육의 미적 가치가 높아야 승자가 될 수 있다. 고중량을 많이 다룰 수 있다고 해서 승자가 아니다. 고중량의 타성에 젖어 힘만 쓰지 말고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적절히 통제하는 테크닉을 구사해야 한다. 그려려면 중량을 줄여야 한다. 근력만 중시하는 트레이닝은 그런 구조의 몸만 만든다. 3. 포징을 연습하라훈련하는 방식과 경기하는 방식이 다른 유일한 종목이 보디빌딩이다. 대부분 등장성 운동으로 훈련하지만 대회에선 움직이지 않고 근육을 짜내는 등척성 운동 방식이다. 아름답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근육은 경기에서 필요가 없다.
4. 항상 시즌 같아라시합 후 체중 관리가 잘 안 되는 보디빌더들이 있는데 그건 근육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살이 찐 것이다. 먹어서 체중만 불린 것이지 벌크 업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영양소가 탄수화물이다. 난 시즌과 비시즌 식단에서 탄수화물의 변화가 거의 없다. 항상 일관성 있게 자기 패턴을 유지하며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 시합 후 몸을 망치는 것은 대부분 음식이다.
<머슬앤맥스큐>2016년 8월호 / 글 <머슬앤맥스큐> 편집부 / 사진 임치훈, GSOUL ART, 메모리레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