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는 일을 향한 열정이 대단하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50대다. 자신을 피트니스계의 김혜수라고 소개한 이소영 선수도 이와 닮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그녀의 열정을 함께 확인해보자.

나이가 아닌 열정이 기준
1969년생인 이소영 선수는 뛰어난 근육으로 다수의 대회에서 입상한 실력파 피트니스 선수다. 근육의 질만 보면 수십 년 동안 운동으로 다져온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녀는 미대를 나와서 중학교 미술 교사를 꿈꿨던 평범한 미술학도였다. 이후 결혼하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져 7년 동안 유치원 교육 사업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 과정은 너무나 놀라웠다. 우선 유아교육을 전공하기 위해 다시 대학을 다녔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여러 과목에서 A+를 받으며 장학금을 타는 성실함도 보여주었다. 이미 한 번 대학을 나오고 결혼 후 엄마가 된 상태에서 말이다. 이즈음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유아교육 과정 대학을 다니는 동시에 대체의학 대학원에서 스포츠 재활 치료 석사 과정을 수행했고, 관련 논문도 작성했다. 이처럼 그녀의 인생은 매 순간이 도전과 열정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선택의 순간이 오면 나이가 아닌 열정을 가치 척도 삼아 모든 것을 결정했고, 일단 결정한 후에는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습성은 운동에서도 빛을 발했다.

운동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다
10년 전쯤 고관절 통증을 겪은 그녀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겨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때마침 만난 심재근 선수의 트레이닝 덕분에 통증은 점점 나아졌다. 그때 그녀의 몸 안에 생긴 기쁨 이상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4년간 재활 트레이닝을 한 후 추천을 받아 나간 지방의 뷰티 보디 대회에서 첫 출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위를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선수로서의 자신감을 얻은 순간이었다. 열정과 자신감의 시너지 효과 덕분이었을까. 이후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입지를 쌓았다. 그녀는 스승님 말씀을 소름 끼칠 정도로 그대로 따르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사는 절박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한다. “나이가 들어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사라져서 나이가 드는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운동한다는 그녀. 앞으로는 40대 이후 놀고 싶은 사람을 모아 디제잉 페스티벌 등을 찾아가는 군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단, 근육량이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탈락이라니 참고하길. 이소영 선수의 인생이 지금처럼 쭉 신명 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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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회 TOP 5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201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머슬마니아를 꼽았다. 허리에서부터 시작되는 흑인 여성 선수들의 엉덩이를 보고 감탄했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퍼포먼스와 포징으로 승부수를 뒀다고 한다. 최선을 다한 결과로 얻은 TOP 5라는 성적은 참으로 달콤했다고.
포인트
자신의 몸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위로 광배근을 꼽았다. 어렸을 때는 역도 선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콤플렉스였다고. 그러나 이제는 효자 부위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선
그녀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전에 선(善)함을 얘기한다. 선함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바른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란다. 그녀는 스승, 동료, 무도에 대한 선함이 합쳐져 결국 아름다운 몸이 된다고 믿는다.
재능기부
이소영 선수는 약 5년 전부터 강남구청 소속 노인대학에서 체조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야 바른 사회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디제잉
디제잉 페스티벌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직접 디제잉도 할 정도로 디제잉을 좋아한다는 이소영 선수. 너무 어려워서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아무튼 그 끼와 에너지가 합쳐져서 무대 포징에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기운이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앞으로도 무대가 클럽인 것처럼 즐기고 싶단다.
글 박상학 사진 Steve Baek



